“음운 변동표도 외웠고, 문장 성분도 정리했고, 중세 국어 표기도 봤는데” — 그런데도 시험지에서 〈보기〉와 다섯 개의 선지를 마주하면 손이 멈춘다. 문법은 분명 ‘외우면 되는’ 영역이라고 들었는데, 왜 외운 만큼 점수가 안 나올까. 답은 단순하다. 평가원 문법 문항이 묻는 것은 ‘아는가’가 아니라 ‘적용할 수 있는가’이기 때문이다.
한눈에: 코그닉스랩 국어연구소가 2014~2025년 시행 평가원 국어의 문법(언어) 문항 180개를 코딩했다. 절반이 넘는 61.7%가 개념을 외웠는지가 아니라, 〈보기〉에 주어진 단어·문장에 규칙을 ‘적용’하게 하는 문항이었다. 가장 흔한 함정은 규칙이 성립하는 조건 하나를 빼놓는 조건 누락(18.9%)이었다. 문법은 암기 과목이 아니라 규칙 적용 훈련이다.
문법은 왜 외워도 틀리나
문법 공부의 기본값은 ‘개념 암기’다. 음운 변동의 종류를 외우고, 문장 성분을 구분하고, 안긴문장의 이름을 외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한다. 그런데 시험은 그 개념을 되묻지 않는다.
평가원 문법 문항 180개를 사고 유형으로 코딩하면, ‘적용’이 61.7%로 압도적 1위다. 그다음이 정보 확인(13.9%), 정보 결합(10.6%) 순이다. ‘적용’이란 개념을 그대로 묻는 대신, 〈보기〉에 처음 보는 단어나 문장을 주고 “여기에 그 규칙을 대입해 보라”고 요구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개념 노트를 완벽히 외운 학생도, 시험장에서 처음 보는 단어에 규칙을 적용해 본 경험이 없으면 무너진다. ‘비음화’가 무엇인지 아는 것과, 처음 보는 단어를 발음해 비음화가 일어나는 자리를 찾아내는 것은 다른 능력이다. 문법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적용의 숙련도로 갈린다.
평가원 문법은 다섯 영역에서 나온다
문법 문항이 다루는 개념은 무한하지 않다. 180문항을 나누면 아래 다섯 영역이 거의 전부(99.4%)를 덮는다.
| 영역 | 비중 | 대표 소재 | 이 영역의 주된 함정 |
|---|---|---|---|
| 형태론(단어) | 31.7% | 단어 형성·용언 활용·품사 | 조건 누락·유사어 혼동 |
| 의미·담화 | 18.9% | 다의어·지시 표현·높임 | 맥락 이탈·조건 누락 |
| 통사론(문장) | 17.8% | 문장 성분·문장의 짜임·문법 요소 | 조건 누락·맥락 이탈 |
| 음운론 | 16.1% | 음운 변동·표준 발음 | 유사어 혼동·조건 누락 |
| 중세 국어 | 15.0% | 조사·표기법·활용 | 유사어 혼동·조건 누락 |
핵심 개념. 평가원 — 6월·9월 모의평가와 수능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언어와 매체 — 2022학년도부터 시행된 국어 선택과목으로, 언어(문법)가 이 과목의 핵심 축이다. 적용 문항 — 개념을 직접 묻지 않고, 〈보기〉에 제시된 단어·문장에 규칙을 대입해 판단하게 하는 문항 유형. 조건 누락 — 규칙이 성립하는 전제 조건을 선지가 빠뜨려 오답을 만드는 함정.
다섯 영역은 소재가 다르지만, 오답을 만드는 방식은 놀랍도록 겹친다. 표의 오른쪽 칸을 세로로 훑어보면 ‘조건 누락’이 다섯 영역 전부에 등장한다. 이것이 문법 함정의 뼈대다.
평가원은 ‘조건’으로 함정을 만든다
문법 규칙은 대부분 이렇게 생겼다. “A라는 조건에서 B가 일어난다.” 그런데 학생의 머릿속에는 조건 A가 흐려지고 결과 B만 남기 쉽다. 평가원 선지에서는 바로 그 지점이 반복적으로 함정으로 나타난다. 조건을 빼거나 바꿔서, B를 지나치게 넓게 적용한 선지가 오답으로 깔린다.
세 영역의 대표 함정을 실제 규칙으로 살펴보자. (아래 예시는 평가원 문항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함정의 구조를 보여주기 위해 표준 규칙으로 구성한 것이다.)
① 음운 — 조건 누락. ‘ㄴ’ 첨가는 솜이불[솜니불], 한여름[한녀름]처럼 소리가 덧나는 현상이다. 규칙에는 조건이 붙는다. 합성어나 파생어에서, 앞말이 자음으로 끝나고 뒷말 첫 음절이 ‘이·야·여·요·유’로 시작할 때 일어난다. 함정 선지는 이 중 ‘합성어·파생어’라는 조건을 빼고 “자음 뒤에 ‘이·여’가 오면 언제나 ‘ㄴ’이 덧난다”고 일반화한다. 다만 ‘ㄴ’ 첨가는 모든 단어에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규칙이 아니다. 조건이 비슷해도 첨가되지 않는 단어가 있고, 첨가형과 비첨가형이 모두 표준 발음으로 인정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선지는 음운 환경만이 아니라 단어의 구조와 표준 발음으로 인정되는 실제 형태까지 확인해야 한다.
② 통사론 — 개념 혼동. ‘나는 그가 정직함을 안다’에서 ‘그가 정직함’은 명사절로 안긴문장이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명사형 어미 ‘-ㅁ’이 붙었다는 형태만이 아니라, 이 절이 전체 문장에서 ‘안다’의 목적어 역할을 한다는 기능까지 확인해야 절의 종류가 확정된다. 안긴문장에는 명사절·관형절·부사절·서술절·인용절 다섯 종류가 있는데, 함정 선지는 형태만 보고 이름표를 바꿔 달거나(명사절을 관형절이라 부르거나) 문장 안에서의 기능을 슬쩍 바꿔 설명한다. 어미 형태와 문장 성분 기능을 함께 따져야 하므로, 이름만 외우면 반드시 흔들린다.
③ 형태론 — 유사어 혼동. ‘덮밥’은 어근(덮-)과 어근(밥)이 결합한 합성어이고, ‘덧신’은 접두사(덧-)와 어근(신)이 결합한 파생어다. 둘 다 ‘한 단어’라는 점은 같지만 형성 방식은 다르다. 함정 선지는 ‘한 단어’라는 공통점만 부각한 뒤, 합성어를 파생어라 하거나 그 반대로 뒤바꾼다.
세 예시의 공통점이 보이는가. 어느 것도 “개념을 아느냐”를 묻지 않는다. 전부 주어진 단어·문장을 규칙의 조건에 비춰 판단할 수 있느냐를 묻는다. 그래서 문법은 개념서를 여러 번 읽는 것만으로는 늘지 않는다. 각 규칙 옆에 ‘이 규칙은 어떤 조건에서 성립하는가’를 한 문장으로 적어 두고, 그 조건을 처음 보는 사례에 대입하는 연습을 반복해야 한다.
「수능특강, 그다음」이 문법을 다루는 방식도 같은 원리에 서 있다. 개념을 나열하는 대신, 하나의 규칙마다 성립 조건을 분리해 제시하고 그 조건이 지켜지지 않은 사례를 스스로 판별하게 한다. 외운 지식을 처음 보는 자료에 적용하는 훈련 — 평가원이 실제로 요구하는 바로 그 능력이다. 책 소개 보기
그래서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
세 단계로 정리된다.
- 개념을 조건과 함께 정리한다. ‘비음화’를 외우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받침 ㄱ·ㄷ·ㅂ 뒤에 ㄴ·ㅁ이 올 때”라는 조건까지 한 문장으로 붙여 둔다. 규칙은 결과가 아니라 조건이 핵심이다.
- 처음 보는 사례에 대입한다. 개념서를 덮고, 〈보기〉가 딸린 기출 문항으로 넘어간다. 아는 규칙이라도 새 단어·새 문장에 적용해 보면 조건이 흔들리는 지점이 드러난다.
- 틀린 선지의 ‘빠진 조건’을 찾는다. 오답을 그냥 넘기지 말고, 그 선지가 규칙의 어떤 조건을 빼거나 바꿨는지 한 줄로 적는다. 조건 누락이 함정의 18.9%인 만큼, 이 습관 하나가 가장 넓은 함정을 막는다.
문법은 다섯 영역으로 나뉘지만 공부의 원리는 하나다. 개념을 외우는 데서 멈추지 말고, 규칙의 조건을 처음 보는 자료에 적용하는 훈련으로 넘어가는 것. 이 글은 문법 전체를 조망한 개론이고, 연구 노트에서 다섯 영역을 하나씩 함정 설계까지 파고든다. 첫 편은 최대 영역인 형태론 — 수능 문법 형태론 공부법: 파생어·합성어를 다 외웠는데 왜 틀릴까, 둘째 편은 적용 쏠림 1위 음운론이다 — 수능 문법 음운 변동 공부법: 종류는 다 외웠는데 왜 적용에서 틀릴까
자주 묻는 질문
문법 개념을 먼저 전부 외운 뒤에 기출을 풀어야 하나요?
개념 암기와 기출 적용은 분리된 두 단계가 아닙니다. 한 규칙을 배운 직후 그 규칙이 적용된 기출과 변형 사례를 바로 풀어 보는 편이 낫습니다. 개념 1회독과 적용 훈련을 떼어 놓지 말고, 개념·사례·오답 조건 정리를 한 묶음으로 반복하세요.
수능 국어 문법에서 가장 먼저 공부할 영역은 무엇인가요?
비중이 큰 형태론(단어)과 통사론(문장)이 출발점으로 좋습니다. 둘을 합치면 문법 문항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합니다. 다만 어느 영역이든 개념을 외우는 데서 멈추지 말고, 〈보기〉에 규칙을 적용하는 훈련까지 이어가야 합니다.
문법은 언어와 매체를 선택한 학생만 공부하면 되나요?
문법 문항은 선택과목 언어와 매체에서 출제되므로, 화법과 작문을 선택한 학생은 문법 문항을 직접 풀지는 않습니다. 다만 문법 지식은 독서·문학 지문을 정확히 읽는 데에도 도움이 되므로, 선택과 무관하게 기본 개념은 알아 두는 편이 좋습니다.
출처 및 더 읽기
코그닉스랩 국어연구소 분석. 본문 수치는 2014~2025년 시행 평가원 국어(6월·9월 모의평가·수능)의 문법(언어) 영역 180문항을 자체 코딩한 결과이며, 교육청 학력평가는 제외했습니다.
집계 방법. 문법 문항의 위치는 시기마다 달라집니다(2014~2016년 11~16번, 2017~2021년 11~15번, 2022년 이후 언어와 매체의 35~39번). 그래서 시기별 ‘언어’ 구간을 후보로 잡은 뒤, 각 문항의 핵심 개념어를 문법 개념 사전과 대조해 실제로 문법 문항인지 확인하는 방식으로 집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영역 문항 3건이 걸러졌습니다. 같은 문항이 중복 집계되지 않도록 (연도·시행·문항번호)로 중복을 제거했습니다. 매체 자료를 소재로 문법 요소를 묻는 문항(40~45번)은 이 집계에서 제외했습니다 — 평가원이 ‘언어’ 영역으로 배치한 문항만 셌습니다(포함하면 187문항이 됩니다).
각 문항에는 그 문항이 요구하는 주된 판단을 기준으로 사고 유형과 함정 유형을 하나씩 부여했고, 백분율의 분모는 180입니다. 함정 유형은 원래 코딩값 그대로 집계했습니다(유사한 이름들을 하나로 묶으면 순위가 달라질 수 있어, 임의로 묶지 않았습니다). 사고 유형·함정 유형·영역 분류는 코그닉스랩의 자체 기준에 따른 연구용 지표로, 공식 통계가 아닙니다.
- 한국교육과정평가원(kice.re.kr) — 국어 영역 기출 문항 및 채점 자료
- EBSi(ebsi.co.kr) — 기출 해설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어문 규범 — 음운·형태·통사 규칙의 근거
- 코그닉스랩 국어연구소 EdArXiv 프리프린트(aw45e) — 평가원 국어 오답 선택지 인지 부하 분석(자체 1차 자료)
이 글은 코그닉스랩의 자체 조사·집계로 작성되었습니다. 출처: 수능 국어 문법 공부법 — 개념을 외우는 게 아니라 적용하는 훈련이다 — 코그닉스랩